고난주간에 즈음하여

고난주간에 즈음하여

  • 기자명 남소영 목사
  • 입력 2024.03.27 09:00
  • 수정 2024.03.2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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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인에게 고난이 주는 의미

남소영 목사
남소영 목사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으로 기억한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길에서 '통곡의 벽'이라는 곳을 들른 적이 있다.  당시 함께 했던 어느 목사님께서 '통곡의 벽'에 도착하기 전에 눈물 닦을 손수건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손수건까지야 필요하겠는가?’라고 생각하면서 그저 관광버스에서 내려 통곡의 벽을 향해 걸어갔다.

이미 많은 순례객이 벽 앞에서 서성이며 사진을 찍는 이와 벽에 머리를 대고 서 있는 이,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들로 북적였다. 나는 통곡의 벽 앞에 다다랐을 때에야 서성이는 사람들이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주저앉은 사람들은 흐느껴 울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그야말로 통곡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참으로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나도 벽에 난 틈새에 기도문을 적은 쪽지를 돌돌 말아 꽂아 넣는 순간,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응어리 같은 것이 가슴을 타고 올라오더니 구슬 같은 눈물이 제어할 새도 없이 흘러내리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흐르는 눈물을 제어하려고 했지만, 봇물 터지듯 뿜어지는 눈물은 점점 더 뜨거워질 뿐이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이것이 무슨 조화이지? 내가 왜 울고 있는 거야?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미 내 힘으로 제어할 장치가 무너지고 있음을 감지했다.

이유 없이 흐르는 눈물에 대해서 해석하려고 노력하던 내 이성이 멈춘 뒤에야, 수천 년도 전에 '고난의 도가니' 속에서 회심의 눈물을 흘렸을 믿음의 조상들을 생각하며 ‘이것이 영적 공감대란 말인가!’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해마다 우리는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을 맞이하면서 습관처럼 특별새벽기도회와 부활절 페스티벌에 참여한다. 하지만 일 년 중 고난주간에 참여하는 특별새벽기도회는 해마다 새롭고도 특별한 것을 경험하는 것 같다. 2천 년 전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이 마치 내가 당한 고난처럼 이입되어 눈물의 기도가 절로 나오는 경험이다. 예수의 고난에 이입되어 눈물의 기도를 하고 나면, 현재의 내가 겪는 고난에 대한 위로가 되고 고난을 이길 힘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고난을 미화하는 것이야말로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고난 이후의 상급이 크다고할망정 스스로 고난 당하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예수께서도 피하지 않은 것뿐이지 고난을 달갑다고 하시진 않았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아픈 것이고 피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기에 고난에 관한 이야기나 설교를 함에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난의 현장에 놓인 이들에게 고난을 미화하거나 복을 받기 위한 디딤돌이라고 섣불리 이야기했다간 고난의 무게를 더욱 높이는 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불가피하게 고난의 현장에 놓인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불가항력적으로 나라를 잃고 난민이 된 사람들, 천재지변으로 인해 재난을 당한 채 재기하지 못한 이들, 뜻하지 않게 자식과 가족을 잃고 여전히 아픔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이들, 출생하자마자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이들….

고난주간에 즈음하여, “주님의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그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고난의 현장에서 아파하는 이들에게 어떤 설교자가 될 것인가, 아픔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이들이 아직 여전한데 고난주간이 지나고 나면, 부활주일엔 영광과 승리의 잔치를 벌이겠는가!

까마득한 과거에 주님이 겪으신 고난은 지금 여기에 있는 고난의 현장에서 특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손 치더라도 한 가지는 있는 듯하다. 지금 여기서 고난을 겪는 이들과의 공감대 말이다. 공감대야말로 내면의 엄청난 힘을 얻게 한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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