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에서야 선교지 언어에 대해 엄청나게 큰 중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선교사 초년병 시절에는 그것이 왜 그리 중요한지를 실감하지 못했다. 그저 선교사가 되려면 의무적으로 선교지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니까 무조건 배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태국에는 태국어를 외국인들에게 가르치는 언어학교가 있었다. 4살짜리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같은 울타리 반대편에서 아내와 나는 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태국어가 굉장히 단순해서 쉬울것 같았지만 5가지 억양(성조)이 있기 때문에 그리 ‘만만한’ 언어가 아니었다. 우스개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과거에 유럽계 선
1998년 초 의료선교팀을 따라 태국의 메홍선이라는 오지에 들어갔습니다. 소명이나 사명이 있어서 따라간 것이 아니라 신학대학원의 합격통지서를 받아놓고 시간이 남아서 그냥 여행 삼아 따라간 것입니다. 그 깊은 산 속에도 교회가 세워져 있었고 의료팀은 교회에서 마을 사람들을 치료해 주며 전도활동을 했습니다. 그 틈에서 나는 왔다갔다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을 돌보는 책임을 맡아 약 20여 명의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오지의 아이들은 정말 더럽고 냄새나서 가까이 하기가 싫었습니다. 말도 안 통해 내 앞에 선을 그어 놓고